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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2015)

Coin Locker Girl 
6.9
감독
한준희
출연
김혜수, 김고은, 엄태구, 박보검, 고경표
정보
| 한국 | 110 분 | 2015-04-29

 여배우 시나리오 기근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읽기 이전에도 극장에 내걸린 포스터 속에 여배우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여배우의 얼굴이 나왔다 싶으면 연애 이야기거나 여러 주인공 중에 하나이거나. 영화 속에서 다양한 여자 캐릭터가 없다는 글도 간간히 읽었다. 이런 상황에서 차이나타운의 개봉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들기 이전에, 아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 주어야겠구나 하는 의무감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었다.

 

※ 주의 : 스포일러 많음


 

1. 그녀들의 눈빛, 눈빛, 눈빛

 영화 차이나타운을 보면서 일영(김고은 분)과 엄마(김혜수 분)의 눈빛에 주목했다. 한 캐릭터 내에서의 눈빛 변화도 좋았지만 일영과 엄마 사이의 눈빛에 더 관심이 갔다.

 

분명 마주 보는 것일텐데, 얼굴 각도 차이 때문일까. 미묘하게 엇갈린 것처럼 느껴진다.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차이나타운)

 일영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은, '나에게 엄마의 사랑(모성)을 주세요'가 아니라 '나 좀 살려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무심한 듯 흐르는, 그러나 일영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눈빛은 '내가 살려 줄게'가 아니라 '죽지마, 죽을 때까지'였다. 극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한 컷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정면으로 마주치기보다는 시선이 미묘하게 서로 엇갈리고 교차된다거나 서로 다른 컷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일영과 엄마의 엇갈림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일영이 엄마를 보는 눈빛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차이나타운)

엄마가 일영을 보는 눈빛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차이나타운)

 덧붙여, 독기를 품은 어린 일영(김수안 분)의 눈빛은 김혜수, 김고은 두 이름만 보고 극장을 찾았던 나를 놀라게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즉시 엉덩이 털고 일어나는 내가, 크레딧에서 어린 일영의 이름을 찾아 보았으니 말이다.

 

 

2. 그래서 쓸모가 대체 뭐야?

 영화의 초반 주구장창 '쓸모'를 이야기한다. 쓸모 없으면 버려지는 세계, 그곳이 차이나타운이었다. 그런데 그 쓸모는 영화의 중반부에서는 갑자기 붕 뜨더니, 후반부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온다. 차이나타운의 공간 설정으로만 사용하기에는 '쓸모'에 너무 힘을 주었고, 영화의 줄기로 삼기에는 너무 엉성한 느낌이다.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차이나타운)

 물론 '쓸모'에 대하여 해석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엄마에게 있어서 일영의 쓸모는 일영이 잔인한 차이나타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일 때에 생긴다. 그러나 일영은 죽어가는 개를 도와주지도 죽이지도 못하는 아이였고, 엄마는 그 개를 삽으로 내리쳐 죽였다. 극 초반 나온 개에 얽힌 일화는 엄마가 일영에게 석현(박보검 분)의 작업을 지시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개의 자리에 석현이 들어온 것일 뿐이다. 일영은 죽어가는 개를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작업 대상이 된 석현을 죽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일영에게 '네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하는 것은 차이나타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인지 증명해 보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 정도의 친절함, 그 정도의 따스함에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엄마의 명대사 '내가 쓸모가 없네'에서의 쓸모, 즉 엄마의 쓸모는 일영의 쓸모와 연장선 상에 있다. 엄마의 첫 번째 쓸모는 일영을 지키는 것이다. 석현을 작업하는 날 엄마를 배신한 일영을 작업하지 않은 점, 치도(고경표 분)를 통해 일본으로 보내려 한 점, 일영이 치도의 무리에서 탈출해 일본으로 건너간 소식을 알리며 나머지 식구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한 점이 그렇다. (겉으로는 '아무 것'은 일영을 돕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 속에는 일영을 해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다른 새끼들이 엄마가 이상해졌다고 말할 만큼 일영을 감쌌다. 엄마의 두 번째 쓸모는 일영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정'할 수 있도록. 그 대상이 생애 처음으로 따뜻함을 준 사람(석현)이든 함께 식사를 하던 가족이든 엄마든. 그래서 엄마를 죽이러 가겠다는 일영의 말에 자신의 '쓸모'가 끝이 났음을 받아들이고, 멈칫하는 일영의 칼을 더 깊숙이 찔러 넣는다. 그것이 엄마의 가르침이고, 그것이 엄마의 쓸모이므로.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 쓸모에 대한 전개가 친절하지 않다. 내가 연결고리를 놓친 걸까, 의도한 연출인 걸까. 단계별로 놓여 있어야 할 디딤돌들이 앞과 뒤에만 몰려 있는 것 같다. 가운데가 빠진 모양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에도 보폭에 맞추어 한 번 더 디뎌야 할 돌이 필요한 법이다. 차이나타운에는 그 돌 하나가 부족했다. 쓸모에 대한 이야기가 뜬구름이 되어 버리니, 캐릭터(일영, 엄마)와 공간(차이나타운)은 잘 차려 놓고서 이야기는 하다만 듯한 느낌이 든다. 

 

 

3. 나도 묻고 싶다. 걔(석현)가 어디가 좋았니?

 

뭐지? 이 뜬금 없는 데이트 현장은?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차이나타운)

 성인이 된 일영의 등장씬에서 일영이 라이터의 부싯돌 휠을 돌리는 장면이 클로즈업 된다. 일영에게 있어서 석현(박보검 분)은 부싯돌 같은 존재인데, 여성 느와르라는 면에 너무 힘을 준 탓일까 석현 캐릭터는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석현이 일영의 부싯돌이 되기 위해서는 차이나타운의 주요 인물들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어두움으로 표현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의 다른 면은 밝음이고, 그 밝음은 낯섦, 설렘, 호기심 등으로 해석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감을 잃어버린 채 밝은 면만을 가지고 있는 석현은 어색함, 이질감 등으로 해석되고 말았다. 애초에 석현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잘못된 것이지, 석현 역을 맡은 박보검의 연기력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배우 중 하나인데ㅠㅠ)

 

 이외에도, 일영과 10번 보관함, 식구(&식사)의 의미, 홍주 역을 맡은 조현철의 미친 듯한 연기력, 일영에게 옷을 사 주기 위해 나온 걸까 싶은 쏭(이수경 분)의 쓸모, 원제인 'Coin Locker Girl'보다 이상한 제목이 되어 버린 제목 등등 영화 차이나타운에 대하여 쓰려고 했던 말은 많았지만 더 이상 못 쓰겠다.

 

 내 글빨(?)이 여기까지인 걸로~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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